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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기 연습

<좋은 기고문> 당신, ‘個衆’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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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고문을 소개받아서 함께 나누고자 여기에 올립니다.

새로운 방송을 준비하는 저에게는 깊은 울림이 있는 글이네요.
세상은 변했고, <절대반지>는 이미 시청자들에게 넘어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음, EBS에 이런 고수가?)

요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정확한 정보, 도움이 되는 정보는 이미 시청자 자신, 혹은 우리 자신들이 만들어낸 정보들일 겝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어떤 정보를 접하고서 달어놓은 무수한 댓글들, 호오의 반응들, 또 다른 이견과 의견들의 충돌. 그런 것들을  유추하여 비로소 어떤 '상'으로 맺히며 얻어지는 정보가 가장 중요한 것에 근접하고, 가장 정확한 것에 근접하며, 가장 도움이 되는 정보에 근접하는 정보라는 것이죠.

이제는 방송도 'PD, 작가가 기가막힌 아이디어를 내고, 창의력을 발휘해서 잘 촬영하고 자신들의 느낌과 생각을 시청자들에게 부끄럼없이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중요하고 정확하며 도움이 되는 좋은 방송이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시청자들에게 최후의 심급에서 어떻게 수용될 것인지, 어떤 의미연관의 통로를 가질 수 있어서 무수한 클릭질(?)의 험난한 시험을 통과할 지가 추가되어야겠지요?

 저 롱테일의 기나긴 꼬리의 검증을 받으며 살아나는,  무수한 댓글과 스팸들의 칼질을 통과하고 마침내 유추의 힘으로  끝내 공중의 가치관으로 승화하는 프로세스...

정보를 소비하는 행태 자체가 새로운 정보가 되는 세상.
그러므로 방송이 어떻게 소모되는 지조차 반영이 되어있는 방송을 만들어야 한다는...

갈수록 방송해서 먹고살기 힘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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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個衆’의 힘


〈임종수/EBS 편성기획팀 전문위원〉

최근 ‘타임’지가 올해의 인물로 ‘당신’을 선택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타임’지 평론가 그로스먼은 “당신이 정보시대를 통제한다”라는 말로 ‘당신’의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당신’은 이번호 ‘타임’지 커버의 거울에 비친 우리 모두이다. 그들은 문화텍스트 재매개의 주체이자 힘의 담지자들이다. 위키피디아는 ‘당신’이 실현된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230여년 전통의 브리태니커의 아성을 무너뜨린 위키는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당신’들의 참여로 만들어 낸 새로운 지식 표준이다. 최근 구글이 인수해 더 관심을 끈 유튜브 역시 ‘당신’들이 실현한 대표적인 세계이다.

블로그는 개인으로서 ‘당신’이 활동하는 훌륭한 공간이다. 이라크 전쟁의 인간적 참상을 생생하게 전해줬던 살람팍스, 지난해 중국 다롄에서 비무장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발포 장면을 고발한 블로거 등이 그들이다. 국내에서도 개똥녀 사건에서부터 부실도시락 사건, 어린이집 원장 폭행 사건 등으로 문화와 정부정책에 변화를 가져온 이들이 모두 블로그의 ‘당신’들이다.

‘타임’의 ‘당신’ 선정은 인류의 존재 양태 면에서 ‘개중’(個衆)이 등장했음을 선포한 것에 다름 아니다. 개중은 특정 이슈나 관심 등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반응하는 ‘개인화된 대중’(individualized mass)이다. 대중이면서 독립된 개인이며, 개인이면서도 집합적 대중이 바로 개중이다. 신문과 방송이 빚어낸 ‘대중(大衆)’ 사회에서 케이블, 위성에 의해 계층별, 취향별로 구분되는 ‘분중(分衆)’의 시대를 넘어, 개개인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대중으로 살아가는 ‘개중’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당신’들은 기성 매체의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함으로써 해당 이슈에 관심 있는 대중들과 더불어 이슈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들은 글쓰기와 퍼나르기, 그리고 그것 이상으로 중요한 적극적인 읽기와 같은 ‘역전된(inversed)’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힘을 모아낸다. 역전된 커뮤니케이션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웹2.0으로 대표되는 인터넷의 진화 덕분이다. 웹2.0은 3~4년 전 닷컴사 버블 붕괴 당시 참여, 반응, 공유를 특성으로 하는 흥한 닷컴사들의 트렌드를 일컫는 용어다. 웹2.0은 인터넷 진화의 한 국면으로서 인터넷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임과 동시에 아래로부터의 커뮤니케이션 모델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의 진화가 위기의 신문에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문제는 역전된 커뮤니케이션에 얼마나 제대로 적응할 것인가일 터이다. 그 방법은 말할 것도 없이 ‘당신’들로 하여금 세상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듯 한국의 신문은 과도하리만큼 자신의 이야기만을 늘어놓는다. 대통령 선거와 같은 정국에서는 안쓰러울 정도다. 그들이 애써 무시하는 것은 언론은 더 이상 개중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다. 저널리즘의 힘이 살아 있는 ‘당신’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전통적인 뉴스로 비춰 볼 때 ‘당신’이 생산하는 콘텐츠가 설익은 것일 수도 있다. 때로는 대중적 영합이나 오용, 무책임성, 어설픈 휴머니즘이라고 비판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널리즘 자체가 지속적인 진화의 산물일 뿐더러 완전해 보이지 않는 ‘당신’의 참여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개중의 등장이 미디어의 진화일지 아니면 퇴조일지, 거기에서 미디어가 살아남을지는 ‘당신’에 대한 겸허한 태도에 달려 있다. 미디어가 다루는 정책과 이념을 평가하는 삶의 현장을 ‘당신’ 이상으로 제대로 알려주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원문: 경향신문 <기고> 당신, ‘個衆’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