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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랑 함께

아이들이랑 같이 보는 영화 <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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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c"




어제 우울한 일이 있어서, (순수하지 못한 어른들의 세계에 마음을 다쳐서) 일찍 집에 들어가기로 하고, 아파트 입구에서 갑자기 차를 돌려 비디오가게에 갔습니다. 아들놈 능현이랑 딸놈 소희랑, 비디오 한편 때리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들어서...어떤 영화를 고를까?

'빅'을 떠올렸습니다.  이 영화는 제 마음속에 아주 재미있고 흥분되었다고 기록되어있는 영화인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이유가 갑자기 아주 궁금해졌거든요?
뻔한 내용일 것같은데 어린 제가 왜 그렇게 열광했을까요? 그게 우리 아이들에게도 통할지, 아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매우 궁금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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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비디오 가게에는 없어서, 조금 멀리 가보았지만, 거기서도 실패, 오래된 영화라 구하기 힘들  것 같다는 비디오가게 아주머니의 말씀에 거의 포기하던 차에, 우연히 들른 롯0 마트에서 이걸 발견하고는 잽사게 9000원 주고 샀습니다.

프로젝터에 전원을 넣고, 램프를 굽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의 얼굴에도 호기심이 가득합니다. 아빠가 힘들게 구해왔다고 하니, 은근히 기대가 되는 눈치입니다. 아내도 일찍 들어와 함께 영화를 보는 이 상황에 관대한 표정입니다.

1인용 소파의 깊은 곳에 허리를 구겨넣고 영화를 보던 능팔이(이름은 능현이인데, 너무 소중해서 다들 능팔이라고 부릅니다)가 슬슬 흥분을 하기 시작합니다. 환상이 시작되는 놀이공원 씬 부터죠. <졸타>기계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하는...

아이가 갑자기 어른의 몸이되고, 몸과 정신연령의 불일치는 묘하게도 엄중한 시장의 논리와 통계적 합리주의를 작살을 내놓으며, 장난감 회사의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하게 만들지요. 영화 내용 중, 장난감이 시장에서 통할 지 안통할 지를 놓고, 주인공과 그를 시기하는 경쟁자 사이에 옥신각신 하는 내용이 있는데, 아이들은 일제히 우리의 주인공 편을 들면서,  그 경쟁자가 주장하는 <초고층 빌딩 로보트>가 왜 자신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며 주인공이 그 사실을 얼마나 잘 끄집어 내고 있는지 흥분하며 소리를 질러댑니다.

13살 먹은 어른이 사랑을 합니다. 아들놈이  여자랑 키스하는 장면에서 묘한 표정을 짓습니다.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이랑 자기 자신이랑 아이텐티티를 맞추잖아요?  이 놈이 지금 그러고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거의 신음소리를 냅니다. 아내랑 제가 힐끔 보고 우스워 죽습니다.

사랑에 빠진 여자 어른은 이렇게 이야기하죠. "당신은 너무 착해, 그리고 너무 어른스러워"
역설적이게도 열세살, 우리의 주인공은 어른스러움으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나중에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주인공이, 그 신비한<졸타>기계를 다시 찾아내고,  다시 소원을 비려는 순간, 아이들이 아쉬운 심정을 토로합니다.
능팔이가  "그냥 여자랑 결혼하게 해줘" 이렇게 외칩니다.
소팔이는 질세라 "여자를 어린아이로 바꿔줘" 이렇게 오빠 의견에 토를 답니다.

영화의 여자는 어른인 채로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고 있고, 우리의 주인공은 커져버린 양복 바지를 질질 끌며 엉거주춤한 미소를 짓는 열세살의 소년으로 돌아가죠.

눈동자에 아쉬움이라고 써놓고 능현이는 입맛을 쩍쩍 다십니다. 어른 여자랑 사랑도 하고, 키스도 나누는, 자기 정체성을 동일시해봤던 묘한 경험이 끝났기 때문일테지요.

아마 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 영화를 좋아했었나봅니다. 게다가 여자가 예쁘잖아요. 환상적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으로  포장도 했었던 것 같고요.

하지만 이제 영화를 보니, 그 때와는 다른 면에서 영화가 위안을 주었습니다.
순수하다는 것, 그 때는 그걸 모르지만, 그 누구라도 인생에 한번 쯤은 순수했다는 것.
그 순수함은 어른 여자가 보기에도 <어른스러울만치> 매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도, 마음을 다치게 한 어떤 분도, 그래도 언젠가 한 번은 순수했다는 것.

시간과 욕심으로 묻은 때를, 숟가락으로 계속 파내면 지금도 그걸 볼 수 있을까요?
그게 그래도, 작은 위안을 줍니다.


<영화를 다보고 아이들과 빅에 나오는 이 곡을 함께 연주하며 밤늦게 놀았습니다>
 

Heart and 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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