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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기 연습

<느끼기 연습> <시> 처음처럼


처음처럼

                                                  신현수


' 처음으로 하늘에 안기는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어린 싹처럼'


나는 적어도 학교에서 쫓겨날 무렵부터는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내게 맡겨진 일에 대해 책임지려고 노력하였으며
그래서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그러나 지금 학교에 있지 않았으므로
후배들이 학교 얘기를 할 때나
자기 학교 선생들끼리 어울릴 때
가르치는 일에 대하여 고민할 때
나는 할 말이 없었고
말할 수 없이 속이 상했다.
나에게로 열린 길은 막혀 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쫓겨날 무렵
이번에도 또 피하거나 비켜 간다면
나의 글쓰기는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학교에서 나온 후
나는 늘 글쓰기를 열망하였으나
학교에 있지 않았으므로 학교 생활을 쓸 수 없었으며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았으므로 아이들 얘기를 쓸 수 없었다.
나의 해직 생활은 시 몇 편으로 족하였고
해직의 고통 어쩌구, 맨날 똑같은 소리 하는 것은
나부터 벌써 지겨웠다.
써야지 하면서 못쓰는 것은 참기 힘든 괴로움이었고
문학은 나의 삶과 뗄 수 없었지만
그렇기에 나는 더 이상 문학을 할 수 없었다.
나에게로 열린 길은 막혀 있었다.

나는 아직 말도 못하는 아들에게 버럭버럭 소리나 질렀으며
아들이 정말 미워서, 멍이 들 만큼 아들의 볼때기를 수도 없이 꼬집었다.
빨래를 하다가 세탁기 속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세탁기와 함께 내 머리도 돌아 버릴 것 같았고
청소를 하다가 청소기를 내동댕이치고는
마누라 퇴근 시간 되기나 기다리고 앉아 있다가
조금만 늦으면 허구헌 날 짜증이나 내고 신경질이나 부렸다.
나는 5년 동안 돈을 한 푼도 벌지 않았고
어머니에게 용돈을 단 한 번도 드리지 않았으며
어머니는 무능한 아들을 둔 것이 어머니의 책임인 양
며느리 눈치를 살피었다.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아들로서 어머니에게
나는 어쩌면 이미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나에게로 열린 길은 막혀 있었다.


나에게로 열린 길은 막혀 있었다.
나에게로 열린 모든 길은 막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돌아가기로 하였다.
생각해 보면 길은 막혔으나 길을 가다 만난 사람들은 내게 남았다.
길을 가다가 만난 나의 사람들과 손 부여잡고
돌아갈 길마저 막혀 버린 후배 두고
돌아가기로 하였다.
돌아가기로 하였다.
돌아가서 내 비록 처음으로 하늘에 안기는 새처럼은 못할지라도
돌아가서 내 비록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어린 싹처럼은 못될지라도
그래 처음처럼
억장이 무너지며 처음처럼
울면서 처음처럼.



신현수님은 시인이자 고등학교 선생님이시고, 인천연대 상임대표이시며,경인지역 새방송 창사 준비위원이십니다.

전교조 활동으로 5년이 넘게 학교를 떠나 계셨던 경험이 있으셔서 우리 희망조합이 남 일 같지 않다고 하시며 소주 한 잔 기울이며 해 줄 이야기도 많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방송사는 만들어졌습니다.  개국 준비에 땀흘리는 우리...

훌륭하게 건설하여 도와주시고 마음주신 일에 답하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