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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기 연습

<詩> 밥벌이의 지겹지 않음

신현수 선생님이 시를 보내오셨다.
감동이 일어 가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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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겹지 않음

 

                                             신현수

예전엔 아이들과 씨름하고

종일 수업 하는 게 힘들어

딱 며칠만 쉬면 좋겠다고

생각한적 많았지만

나이 든 지금은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런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당장 내일부터 학교에 나올 수 없다면 

그래서 밥벌이를 할 수 없게 된다면  

자식들을 가르칠 수도 없고 

먹고 살 수도 없고 

후배들에게 술을 살 수도 없고

스리랑카의 따루시카디브안자리에게  

안정된 급식과 학업에 필요한 학용품

일상생활에 필요한 옷을 사줄 수 없고 

어려울 때 손잡아 주는 친구

상조회에 회비를 낼 수 없고  

매일 아침 쿠퍼스를 날라다주는  

야쿠르트 아줌마를 만날 수 없고

내가 속한 여러 단체의 회비를 낼 수 없고

시민단체에 후원금을 낼 수 없고 

뭐가 보장되는지도 잘 모르지만  

보험금을 낼 수 없다

정말 당장 내일부터 학교에 나올 수 없다면  

아무리 곰곰 생각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게 없다

나이 든다는 것은  

밥벌이의 엄정함을 깨닫는 것 

아이들과 씨름하는 것은 자아실현이 아니라

실은 밥벌이였다는 걸 깨달으니

이제 대체로 모든 게 견딜만하다

전날 술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다음날 일찍 벌떡벌떡 일어나야 하는 내가 

하나도 가엽지 않다

나이 든다는 것은

내 삶이 더 이상 의미 없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  

나이 든다는 것은

세상에 져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 

아 나이 든다는 것은 

밥벌이가 하나도 지겹지 않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