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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관련

아! 똥바다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경인지역 100곳> 이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집단으로 기획했다. HD고화질과 아주 좋은 음질로 담아낼 예정으로, 가보는 그곳에 어떤 사연을 가진 이(명사, 일반인)가 추억하는 방식을 쓸거다.
자료를 조사하는 차원에서 우선, 나한테 좋았던 곳을 기록해본다. 추천도 해주시길...

 그 첫번째로 인천 만수동의 똥바다를 떠올린다.
여기 소개 받고 가보고, 얼마나 재미있고 좋았는지 모른다. 한 번 가보고 나서 누구에게든 추천하곤 한다. 인천 만수동에 있다.
아는 사람만 가지, 모르는 사람은 입구 조차 찾지 못할, 엄청난 포스의 그곳, 택시기사는 대부분 근처까지만 안다. 근처에 내려 굴까는 할머니께 물어보면 뭐라고 말씀해주시는데, 설명을 잘 듣고도 못찾아간다. 필히 가본 사람과 함께 가봐야 찾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기나긴 골목을 미로찾기 하듯 통과하면, 술한잔 걸치기 좋은, 걸치고 나오기 싫은
포장마차들이 주욱 줄지어 있는데, 취기에 올라 오줌이라도 누러 나갔다가는 자칫,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인천의 똥차들이 똥을 버렸다는 바다에 퐁당 빠지기 십상으로 아슬아슬한 위치다. 좋은 화질로 예쁘게 찍어 남기고 싶은 인천의 명물. 똥바다. 그곳이 제 1탄이다.
(아래는 만석신문에 나온 똥바다 관련 기사)


"바지락잡고 수영하고 그랬지.. 똥바다에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똥바다'는 만석동의 변화와 함께 그 쓰임새와 모양이 변해왔다. 만석동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누구나 똥바다와 관련된 기억을 한 두 가지씩 가지고 있을 정도로 똥바다는 동네 사람들에게 친근한 곳이다.
43번지 굴막에서 굴을 까는 김선비할머니(63세)는 15살에 만석동에서 처음 본 똥바다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김씨 할머니는 만석동에 간척사업이 있기 전 넓은 바다의 한 부분인 똥바다를 기억하고 있다.
"내가 부산에서 처음 만석동으로 왔을 때에는 저 철길(북해안선)까지 물이 들어왔었어. 그러다가 한 5년인가 지나서부터 바다를 메우기 시작했지."
바다가 메워지고 새로운 땅이 생겨나자 43번지 일대(만석3차 아파트 주변)에는 작은 판자집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겨난 집들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살았을 때는 300여 가구가 모여 살았다. 좁은 땅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활했기 때문에 집집마다 화장실을 짓는 것은 불가능했다.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함께 사용할 공동 화장실을 바닷가에 10여칸 정도 지어서 사용했다.
김씨 할머니는 "그 공동화장실에서 똥을 누면 그게 다 바다로 떨어졌지. 그래서 물때가 되면 바닷물에 쓸려 내려갔는데 그러면 바닷물 위로 누런 똥이 떠오르기도 했어. 그래서 이 앞 바다를 '똥바다'라고 부르는 게야"하며 '똥바다'라는 명칭의 유래를 설명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름은 똥바다였지만 물이 빠진 뻘에는 바지락이며 소라 등이 많이 살고 있어서 동네 사람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김씨 할머니는 "그 때는 바지락, 소라 같은 것을 주워다 파는 사람들이 많았어. 없는 사람들한테는 그것도 큰 도움이었지. 하지만 이제는 뻘이 다 죽어서 그런 것들도 없어"하며 아쉬움을 나타낸다.
또한 똥바다는 대성목재에서 들여오는 원목을 띄워놓고 짠물을 먹이는 곳이기도 했다. 바다에 떠 있는 원목은 사람들이 몸을 놀리기만 하면 공짜로 땔감을 구할 수 있는 통로였다.
할머니는 "그때에는 다 장작을 때는 아궁이였어. 장작은 거의 원목 껍데기를 땠는데 그걸 말려서 때면 화력이 얼마나 좋았는데. 게다가 나무 껍데기는 어차피 벗기는 거라서 공장에서도 아무도 말리지 않았어"하며 당시를 기억한다.
대성목재의 원목들이 떠있는 똥바다는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특별한 놀이터가 없던 시절, 아이들은 여름이면 똥바다에 몰려가 '통나무 돌리기', '잠수해서 원목 밑으로 지나가기' 등의 놀이를 했다. 똥바다에서는 놀이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얻을 수 있는 '부수입'도 있었다.
43번지에 사는 이영희씨는 "뺑돌이라고 부르던 게 있었는데, 원목들을 연결하는 쇠고리 같은 거였어요. 그런 것들을 주워다가 고철로 팔면 1원정도 받을 수 있었거든요"하며 "그걸로 간식을 사먹기도 했죠"하고 말한다.
대성목재가 없어지고 물에 띄워놓은 원목이 사라진 뒤에도 아이들에게 똥바다는 위험하지만 여전히 재미있는 놀이터였다.
만석동 25번지에 사는 이형석(24)씨는 "제가 어릴 때에도 똥바다에서 노는 것 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었어요"하고 말한다.
하지만 똥바다에서는 사람들이 수영을 하다가 물에 빠지는 사고가 종종 발생했기 때문에 어른들은 아이들이 "똥바다에서 노는 것은 위험하다"며 못마땅해했다.
이씨의 친구인 장명성(24)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똥바다에서 수영을 하다가 물에 빠진 적이 있다.
"도랑(바닥이 움푹 패인 부분)에 빠져서 죽을 뻔한 적이 있어요. 형이 함께 있었지만 어떻게 할 수 없었죠. 다행히 지나가던 아저씨가 허우적거리는 저를 발견하고 구해주셔서 살았어요."
똥바다에서는 수영하는 것 이외에도 할 수 있는 놀이거리가 많이 있었다. 물이 빠진 뻘에서는 게를 잡으며 놀기도 했고, 정박 해 놓은 배 사이를 넘어 다니며 낚싯대를 찾아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씨는 "미끼야 뻘에서 갯지렁이를 잡아서 썼죠. 주로 망둥이가 많이 잡혔는데 그냥 재미로 잡는 거니까 잡았다가 전부 놓아주고 돌아오고는 했어요. 우린 그걸 먹는 법도 몰랐고요"하고 말한다.
아이들은 수영이나 낚시 같은 놀이가 싫증이 나면 똥바다 옆의 철길로 올라와서 새로운 놀이를 시작했다. 그 중에 하나가 철길에 함정을 만들는 '똥싸기'였다.
장씨는 "저는 똥바다에 빠진 뒤로 수영을 하지 않았어요. 그 대신 다른 놀이를 했죠"하며 "철길 나무 사이에 흙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고 거기에 똥을 싸고 나서 흙으로 살짝 덮어두곤 했어요. 그리고는 누군가가 밟기를 기다리는 거예요"하고 '똥싸기'를 설명했다.
똥바다에서 놀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아이들은 소금기에 절어 옷과 몸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때문에 아이들은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동네의 수돗가에서 몸을 씻고, 빨래를 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해도 똥바다에서 놀았던 흔적이 사라지지 않아 야단을 맞는 일이 많았다.
요즘 똥바다에는 바지락을 잡는 사람들도, 수영을 하는 아이들도 없다. 드문드문 대어 놓은 어선 몇 척과 겨울을 나고 다시 시작하게 될 고기잡이를 위해 그물을 손질하는 사람들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광혁) 2004/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