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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공부

을지로 순환선 / 최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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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이야기들 속에 드러나는 애증의 당파성이 일상의 풍경을 빌리는 척하며 강렬한 아지테이션을 퍼붓는 놀랍도록 섬세한 그림입니다. 화면의 오른쪽이 특히 볼 게 많습니다.

이미지 파일이 굉장히 크지만 디테일을 살리고 싶어서 아래에 따로 크게 올립니다.
작가가 5년 동안 그린 것이라 합니다.  최호철은 애초부터 그림을 판화처럼 복제해서 보급합니다. 몇 백 장을 공들여 인쇄해서 일련번호를 매긴 다음 제작에 들어간 정도의 돈만 받거나 허울 좋은 분들에겐 여러 번 거저 나눠주거나 했답니다. 그러니 저도 여기 큰 파일을 갖다 놓아도 허물이 아니겠거니 지레짐작 해봅니다.

아래 그림을 클릭하면 커지고 그림 좌상귀의(때에 따라 다른 귀퉁이) 확장 버튼을 누르면 더 커집니다.  그림 아래 작가의 노트를 붙여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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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철_을지로 순환선_종이에 혼합매체_87×216cm_2000


 낙서일지
끄적거리다 보면 뭔가가 되어 있는 종이를 보며 스스로 신기해하던 기억은 꽤 어린 시절부터 있었다. 그 신기함을 즐기다 보니 본격적인 그림보다는 낙서하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나 보다. 낙서할 때면 사람 얼굴부터 그리게 되는데 아마도 사람에겐 사람이 제일 관심 있는 대상이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눈하고 코만 잘 그리려고 했었다. 한참을 지난 다음에 얼굴을, 머리카락을 그려댔지만 뒷통수나 목덜미는 있는지도 모른 채 몸이며, 손을 그렸다. 손 그리기가 힘드니까 낙서장의 사람들은 괜한 팔짱을 끼거나 주먹을 불끈 쥐곤 했다.
그림 속에서 손가락을 어느 정도 펼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뒤통수와 목덜미의 선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저 밑의 다리며 발도 잘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림을 그린지 10년, 이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그릴 수 있는 것을 더 잘 그리는 것보다는 안 그려본 새로운 것을 찬찬히 보면서 그리는 게 더 재미있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 사람의 제각각의 생김새 모두를 사랑하며 관찰하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었다.
발을 그리다 보면 그 발이 딛고 있는 땅 , 몸을 그리다 보면 몸을 애워싸고 있는 공간이 있는데도 일부러 그리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다. 안 가본 길을 찾아 가듯이 펜이 움직이며 이리저리 다녀야 눈에도 새로운 것이 보인다는 것을 안 다음에는 사람 밖의 것들도 낙서의 대상이 되었다.
어느날, 그토록 피해 다니던 언덕길을 자연스레 그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이후로 사람과 공간을 함께 그리는 재미를 누리면서 낙서한지 다시 10년 , 사람을 그리려니 이야기가 궁금하고 공간을 그리려니 둘러싸고 있는 관계를 알고 싶어지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만화를 그리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그릴 수 있는 것을 머리 속에서 외어서 그렸고, 다음에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종이에 담는 맛에 그림을 그렸다면,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 세상들을 얽어매고 있는 관계의 끈들도 보기 좋게 그려 낼 수 있는 낙서를 하고 싶다. ■ 최호철·시각이미지 생산자



화가로서, 시각이미지 생산자로서 그의 신조는 "알기 쉬운 그림을 그리자" 랍니다.
또 보이는 것, 보고싶은 것을 넘어 보아야 할 것을 그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 세상들을 얽어매고 있는 관계의 끈들도 보기 좋게 그려 낼 수 있는 낙서를 하고 싶다"


요즘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구상하면서 '어깨에 힘을 빼고 만들기'라는 룰을 만들었는데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이분의 그림을 열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배웁니다.

최호철님의 다른 작품들, 이를테면 유명한 <와우산> 같은 작품을 더 보시려면 이곳으로 가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