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아이들이랑 함께2012.02.14 22:08

 



소희가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통과하는 너희 두 녀석들에게 잘못을 저지르면서 스스로 배우는 기회를 선물할테니 우리에겐 용서하면서 배우는 '질긴 인내심'을 답례로 다오."

신고
Posted by 산마이
문화전쟁2008.04.06 12:56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들 그럴텐데
나도 십오륙년 방송을 하면서 늘 '감각' 이나 '삘(삘이라고 발음해야 현장 용어 답다) '을 제일 중요하게 쳤다.

물론 미리 짜놓는 촬영 콘티라든가 편집 구성안 등의 설계도가 있긴 하지만
그 프로그램을 그 프로그램답게 만드는 것은 역시 '삘'이다.

그 '삘'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을 감수했던가.
 '삘'은 농업적 근면성과 반비래한다면서 지각 대장이 되어 팀원들의 원성과 비난의 표적이 되어야했으며
 '삘'을 위해서는 자유인이 되어야한다며 회의하던 스텝들 떼로 몰고 소래포구로 소주마시러 다녀서 황량한 사무실을 혼자 쓸쓸히 지키던 팀장님의 화병을 깊게 만들곤했다. (인사고과의 희생이 늘 뒤따랐다)

하지만 이번에 <주철환 김미화의 문화전쟁>을 만들면서는 그동안의 태도와는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어졌다.
이른바 '삘'과 '감각'을 관통하는 이론적 근거를 가져보겠다는 것이다.

브루디외의 아비투스와 연관된 개념들을 형상화해보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매거진T의 선언처럼, 이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취향'이 그 사람을 말하는 시대가 아니던가.
취향은 누군가의 음모로 강요되거나 설계되는 것이 아니고 세상과 호흡하다보면 자연히 자라나면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다만 나의 취향이  어떤 경로를 따라서 정해지며 깊어지는 지, 스스로 알 수있게 돕는 일.
그것이 내가 <주철환 김미화의 문화전쟁>을 통해서 해보고 싶은 일이다.

브루디외가 말하는 아비투스/디스팅귀시(티내기)/場이론 등을 세트에 구현해보고 싶었다. 당연히 개념들이 실제 작동하는 방식을 똑떨어지게 유기적으로 구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념 자체의 형상화라도 해보고 싶었다.

1. 둥글고 사각진 별도의 무대(공간)와 하찌와 TJ가 연주하는 밴드 무대들은 각각 場이다.

2. MC와 패널들은 뭔가 알려주는 위치가 아니라 판이 벌어지는 무대를 바라보는 객석에 위치한다.
   수용자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주체를 뒤집으니 생각과 느낌에 움직임이 생길 것이다.

3. 디스팅귀시(티내기)를 권하되, 금새 알 수 있게 음악과 노래 코너를 강화한다.

4, 하이브리드나 크로스오버를 권장한다. 파편화되고 전문화된 문화가 서로의 겉모습을 넘나들 때 오히려 본질에가까워지는 것 같다.

5.. 수용자는 결국 르네상스형 인간이다. 시청자를 그렇게 정해 놓는다. 만화도 보고, 영화도 보고, 발레도 보고 클래식과 뽕짝이  종합되는...

6. 여러가지 스튜디오 매이킹이 자유롭도록 자유도를 높인다. 공연도 할 수 있고 함께 영상물도 볼 수 있다.

7. 장기적으로 대본을 자세히 쓰지 않고 자료와 정보를 써넣어 자유로이 이야기하도록 한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미술팀의 양승헌 감독님은 위의 그림처럼 정말 아름다운 세트를 실제 만들어내셨다.

놀라운 경험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고
Posted by 산마이
아이들이랑 함께2007.08.07 14:54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판의 미로  Pan's Labyrinth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인중PD가 좋은 영화를 경배하지 않는다며 서슴치않고 협박하길래
4학년  능현 아들이랑, 프로젝터를 발갛게 구워서 <판의 미로>를 보았다.

보니, 판타지를 빌어 현실을 보여주는데, 판타지를 빌어온 탓에 '현실'이 훨씬 예리하게  눈알을 찌른다. 판타지에서는 현실이 이른바 '전형성의 룰'에 따라 훨씬 도드라져야하기 때문에 리얼리티를 표방하는 일련의 작풍보다 훨씬 알아채기 쉽게 제시되기 마련이다.

현실을 알아채기 쉽게 제시하는 방법으로는 '당파성' 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그 당파성이 초래할 '예측가능할 것 같고 뻔할 것 같은 구성'은 늘 숙제가 된다. 그래서 길레르모 델 토로 가 판타지를 빌어 은유와 환유를 섞어놓고 있는 것일게다.

신념은 고집스레 피를 흘린다.

4학년 능현이가 보다가  "잔인하다!" 며 손으로 눈을 가린다. 그다지 자극적이지 않은 대목임에도 그러는 것은 스토리가 계속 능현이의 감수성을 몰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눈을 찡그린다. 김규항이 좋은 글은 불편하다고 했던 것과 댓구를 이루듯 이 영화는 불편하다. 현실을 에누리없이 목도하는 것은 늘 불편하다.
1944년의 스페인은 지금도 곳곳에서 지속되고 있지않은가.

영화의 끝부분에서 이런 생각에 미쳤다.
프로파간다는 <판타지>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필 두려움과 슬픔으로 가득한 때를 골라 인간세상으로 온 요정공주, 오필리아.
 세상에는 총 맞아 죽은 오필리아가 얼마나 많은가?
 



신고
Posted by 산마이
느끼기 연습2007.07.18 11:28

[PD저널] 1인칭 다큐가 절실한 이유
2007-07-18 11:14:37

다큐를 만들 때, 마치 카메라가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인 것처럼 찍어보는 것이
필생의 목표라 여러 가지 ‘잡 기술’을 써보는데 요즘 쓰는 기술은 <나도 하나 까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방법은 간단하다. 촬영하는 나 자신이 이야기해서 별로
득 될 것 없는 부끄러움을 먼저 하나 까놓는 거다.  그렇게
하면 출연자가 경계를 누그러뜨리는데 이 때 타이밍을 잘
잡고 레코드 버튼을 누른 채, 핵심적인 질문을 쏘아붙인다.
당신의 쪽팔림은 뭔가? 하고. 그렇게 무장해제를 시킨 후
마치 카메라가 없는 상황인 것처럼 찍는다.

하지만 아무리 자연스럽더라도 마치 카메라가 없는 상황인
듯한, 진짜 객관은 찍을 수가 없었다. 그때 마이클무어가
나타나 내 인생에 한줄기 빛을 내어주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이론>에 따르면 일상적 세계와는 달리 양자세계에서는
물질입자의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알 수 없는데 그 이유가 관찰자 때문이라고 한다.
'보는 행위'자체가 대상의 존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객관과 주관의 구분은 없어
지고 상호작용만이 남는, 존재가 죽고 관계가 사는 세계.

‘찰턴 헤스턴’에게 총기소지에 관한 곤혹스러운 질문을 퍼부어대는 마이클무어는 상호
작용하는 미장센 그 자체이다. 객관을 빌어, 있는 카메라를 마치 없는 것처럼 꾸미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현장’이 되고 있다. 1인칭의 다큐가 요즘 절실한 이유다.
 
영화 ‘볼링 포 컬럼바인’은?
99년 12명의 사상자를 낸 미국 컬럼바인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는 연간 총기 피살자수 1만1127명이라는 기적 같은 숫자를 낳고 있는
미국의 총기문화를 시작으로, 광기와 폭력의 역사로 얼룩진 미국을 샅샅이 해부했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로서는 46년 만에 처음으로 2002년 칸느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
했다. 당시 상영 후 13여 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았는가 하면,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영화제 특별상인 55주년 기념상을 받았다.

 
강일석 OBS 정책기획실 PD
 
 
 
 
신고
Posted by 산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