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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기 연습2011.10.07 16:07

신현수 선생님이 시를 보내오셨다.
감동이 일어 가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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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겹지 않음

 

                                             신현수

예전엔 아이들과 씨름하고

종일 수업 하는 게 힘들어

딱 며칠만 쉬면 좋겠다고

생각한적 많았지만

나이 든 지금은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런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당장 내일부터 학교에 나올 수 없다면 

그래서 밥벌이를 할 수 없게 된다면  

자식들을 가르칠 수도 없고 

먹고 살 수도 없고 

후배들에게 술을 살 수도 없고

스리랑카의 따루시카디브안자리에게  

안정된 급식과 학업에 필요한 학용품

일상생활에 필요한 옷을 사줄 수 없고 

어려울 때 손잡아 주는 친구

상조회에 회비를 낼 수 없고  

매일 아침 쿠퍼스를 날라다주는  

야쿠르트 아줌마를 만날 수 없고

내가 속한 여러 단체의 회비를 낼 수 없고

시민단체에 후원금을 낼 수 없고 

뭐가 보장되는지도 잘 모르지만  

보험금을 낼 수 없다

정말 당장 내일부터 학교에 나올 수 없다면  

아무리 곰곰 생각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게 없다

나이 든다는 것은  

밥벌이의 엄정함을 깨닫는 것 

아이들과 씨름하는 것은 자아실현이 아니라

실은 밥벌이였다는 걸 깨달으니

이제 대체로 모든 게 견딜만하다

전날 술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다음날 일찍 벌떡벌떡 일어나야 하는 내가 

하나도 가엽지 않다

나이 든다는 것은

내 삶이 더 이상 의미 없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  

나이 든다는 것은

세상에 져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 

아 나이 든다는 것은 

밥벌이가 하나도 지겹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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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산마이
느끼기 연습2006.12.27 23:15

             술값  

                             신현수


말 많이 하고 술값 낸 날은
잘난척한 날이고
말도 안하고 술값도 안낸 날은
비참한 날이고
말 많이 안하고 술값 낸 날은
그중 견딜만한 날이지만
오늘, 말을 많이 하고 술값안낸 날은
엘리베이터 거울을
그만 깨뜨려버리고 싶은 날이다. 

(<작가들> 2006년 여름호)

 
http://cafe.naver.com/shinhyunshoo.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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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산마이
느끼기 연습2006.12.27 13:09

처음처럼

                                                  신현수


' 처음으로 하늘에 안기는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어린 싹처럼'


나는 적어도 학교에서 쫓겨날 무렵부터는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내게 맡겨진 일에 대해 책임지려고 노력하였으며
그래서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그러나 지금 학교에 있지 않았으므로
후배들이 학교 얘기를 할 때나
자기 학교 선생들끼리 어울릴 때
가르치는 일에 대하여 고민할 때
나는 할 말이 없었고
말할 수 없이 속이 상했다.
나에게로 열린 길은 막혀 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쫓겨날 무렵
이번에도 또 피하거나 비켜 간다면
나의 글쓰기는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학교에서 나온 후
나는 늘 글쓰기를 열망하였으나
학교에 있지 않았으므로 학교 생활을 쓸 수 없었으며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았으므로 아이들 얘기를 쓸 수 없었다.
나의 해직 생활은 시 몇 편으로 족하였고
해직의 고통 어쩌구, 맨날 똑같은 소리 하는 것은
나부터 벌써 지겨웠다.
써야지 하면서 못쓰는 것은 참기 힘든 괴로움이었고
문학은 나의 삶과 뗄 수 없었지만
그렇기에 나는 더 이상 문학을 할 수 없었다.
나에게로 열린 길은 막혀 있었다.

나는 아직 말도 못하는 아들에게 버럭버럭 소리나 질렀으며
아들이 정말 미워서, 멍이 들 만큼 아들의 볼때기를 수도 없이 꼬집었다.
빨래를 하다가 세탁기 속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세탁기와 함께 내 머리도 돌아 버릴 것 같았고
청소를 하다가 청소기를 내동댕이치고는
마누라 퇴근 시간 되기나 기다리고 앉아 있다가
조금만 늦으면 허구헌 날 짜증이나 내고 신경질이나 부렸다.
나는 5년 동안 돈을 한 푼도 벌지 않았고
어머니에게 용돈을 단 한 번도 드리지 않았으며
어머니는 무능한 아들을 둔 것이 어머니의 책임인 양
며느리 눈치를 살피었다.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아들로서 어머니에게
나는 어쩌면 이미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나에게로 열린 길은 막혀 있었다.


나에게로 열린 길은 막혀 있었다.
나에게로 열린 모든 길은 막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돌아가기로 하였다.
생각해 보면 길은 막혔으나 길을 가다 만난 사람들은 내게 남았다.
길을 가다가 만난 나의 사람들과 손 부여잡고
돌아갈 길마저 막혀 버린 후배 두고
돌아가기로 하였다.
돌아가기로 하였다.
돌아가서 내 비록 처음으로 하늘에 안기는 새처럼은 못할지라도
돌아가서 내 비록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어린 싹처럼은 못될지라도
그래 처음처럼
억장이 무너지며 처음처럼
울면서 처음처럼.



신현수님은 시인이자 고등학교 선생님이시고, 인천연대 상임대표이시며,경인지역 새방송 창사 준비위원이십니다.

전교조 활동으로 5년이 넘게 학교를 떠나 계셨던 경험이 있으셔서 우리 희망조합이 남 일 같지 않다고 하시며 소주 한 잔 기울이며 해 줄 이야기도 많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방송사는 만들어졌습니다.  개국 준비에 땀흘리는 우리...

훌륭하게 건설하여 도와주시고 마음주신 일에 답하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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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산마이
느끼기 연습2006.12.24 09:47
이미혜

                                      신 현 수


'통일을 여는 민주 노동자회'
이미혜 회장은 해직교사 시절에 만난
내 친구인데
그는 대학 다니다가
공장에 투신하느라
졸업도 못하였고
젊음을 바쳐서
다 함께 잘 사는
좋은 세상 만드느라
그 흔한 자격증 하나도 없다.
아버지는 사람 좋아 남 보증을 서 주었다가
그나마 있던 집 한 채도 날려버리고
그의 착한 후배들이 모아준 돈으로 작은 전세방에서
부모님 모시고 산다.

재작년 겨울에 입었던 낡은 까만 색 오바를
올 겨울에도 입는 이미혜는
내가 한 두 살 많으므로
내 후배인데
나는 아들이 벌써 국민학교 3학년 올라가고
그는 아직 시집도 안 갔다.
그의 그 동안의 눈물과 고통이
전두환과 노태우 등을 감옥가게 하였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이
사람들은 노태우 전두환 등을
개새끼, 죽일 새끼 욕하면서
그들을 감옥가게 한 미혜는 칭찬하지 않는다.
지금껏 문자그대로 청춘을 바쳐
더불어 사는 세상 참 세상 만드느라
세속적인 그 어느 것도 이루어 놓은 것 없는 그에게
이제 먹고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한심하다는 듯한 눈으로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만 한다.
그가 허구한 날 감시와 미행에 시달릴 때에
골방에서 영어 테이프나 듣고 앉아 있었으면서
외국어 하나쯤은 능숙하게 구사해야 한다고 자랑한다.
그가 공장에서 실을 뽑을 때
자기 혼자 무슨 고시, 무슨 자격증 시험준비 했으면서
요즘은 역시 뭐니뭐니해도 전문성이라고 말한다.
그가 거듭되는 집회와 시위, 회의와 모임에 참가할 때
컴퓨터 앞에 앉아 컴퓨터 게임이나 두드렸으면서
요즘 세상에 아직 컴퓨터도 모르느냐고 비난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기침이 그치지 않는
미혜는 내 동생인데
대학도 졸업하고 운전면허증에 선생 자격증도 있는 나는
테트리스도 아주 잘 할 줄 아는 나는
그에게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다.
복직하고 나서 딱 한 번 5만원인가 미혜 통장에 넣어준 적이 있는데
겨우 돈 5만원 넣어 주면서
그가 조직사건에라도 엮여 감옥에 가게 되면
통장에 돈 넣어준 나도 끌려가게 되는 것을 아닐까하는
한심한 생각을 했고,
그리고 술 두어 번 사주었다.
아, 그리고 전철 승차권 만원 짜리 한 번 사줬다.

나를 비롯한
그에게 아무 것도 해준 것 없는 자들이여
한번이라도 역사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그의 피와 땀을 기억해야 한다.
그의 눈물과 고통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일 더 이상 운동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면
그를 제일 좋은 집에서 살게 해야 하고
가장 좋은 차를 태워야 한다.
철마다 옷도 한 벌씩 사줘야 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기침이 그치지 않는
그의 천식을 반드시 고쳐줘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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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산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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