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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관련

문화전쟁 세트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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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럴텐데
나도 십오륙년 방송을 하면서 늘 '감각' 이나 '삘(삘이라고 발음해야 현장 용어 답다) '을 제일 중요하게 쳤다.

물론 미리 짜놓는 촬영 콘티라든가 편집 구성안 등의 설계도가 있긴 하지만
그 프로그램을 그 프로그램답게 만드는 것은 역시 '삘'이다.

그 '삘'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을 감수했던가.
 '삘'은 농업적 근면성과 반비래한다면서 지각 대장이 되어 팀원들의 원성과 비난의 표적이 되어야했으며
 '삘'을 위해서는 자유인이 되어야한다며 회의하던 스텝들 떼로 몰고 소래포구로 소주마시러 다녀서 황량한 사무실을 혼자 쓸쓸히 지키던 팀장님의 화병을 깊게 만들곤했다. (인사고과의 희생이 늘 뒤따랐다)

하지만 이번에 <주철환 김미화의 문화전쟁>을 만들면서는 그동안의 태도와는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어졌다.
이른바 '삘'과 '감각'을 관통하는 이론적 근거를 가져보겠다는 것이다.

브루디외의 아비투스와 연관된 개념들을 형상화해보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매거진T의 선언처럼, 이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취향'이 그 사람을 말하는 시대가 아니던가.
취향은 누군가의 음모로 강요되거나 설계되는 것이 아니고 세상과 호흡하다보면 자연히 자라나면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다만 나의 취향이  어떤 경로를 따라서 정해지며 깊어지는 지, 스스로 알 수있게 돕는 일.
그것이 내가 <주철환 김미화의 문화전쟁>을 통해서 해보고 싶은 일이다.

브루디외가 말하는 아비투스/디스팅귀시(티내기)/場이론 등을 세트에 구현해보고 싶었다. 당연히 개념들이 실제 작동하는 방식을 똑떨어지게 유기적으로 구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념 자체의 형상화라도 해보고 싶었다.

1. 둥글고 사각진 별도의 무대(공간)와 하찌와 TJ가 연주하는 밴드 무대들은 각각 場이다.

2. MC와 패널들은 뭔가 알려주는 위치가 아니라 판이 벌어지는 무대를 바라보는 객석에 위치한다.
   수용자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주체를 뒤집으니 생각과 느낌에 움직임이 생길 것이다.

3. 디스팅귀시(티내기)를 권하되, 금새 알 수 있게 음악과 노래 코너를 강화한다.

4, 하이브리드나 크로스오버를 권장한다. 파편화되고 전문화된 문화가 서로의 겉모습을 넘나들 때 오히려 본질에가까워지는 것 같다.

5.. 수용자는 결국 르네상스형 인간이다. 시청자를 그렇게 정해 놓는다. 만화도 보고, 영화도 보고, 발레도 보고 클래식과 뽕짝이  종합되는...

6. 여러가지 스튜디오 매이킹이 자유롭도록 자유도를 높인다. 공연도 할 수 있고 함께 영상물도 볼 수 있다.

7. 장기적으로 대본을 자세히 쓰지 않고 자료와 정보를 써넣어 자유로이 이야기하도록 한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미술팀의 양승헌 감독님은 위의 그림처럼 정말 아름다운 세트를 실제 만들어내셨다.

놀라운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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