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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공부

미술계라는 이름의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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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hawks Banksy



보풀 샘의 블로그에 갔더니 이런 재미있는 그림이 있어서 퍼다 놓고, 이래 저래 생각 한번 해봅니다.  빨리 편집 마쳐야 할  다큐가 한 편 있는데, 그거는 안하고 이래 저래 생각해봅니다.

우리의 뱅시가 뭐가 또 틀어졌는지, 점잖은 사람들의 조용한 저녁시간을 망쳐놓고 있군요.
옷 입은 걸로만 봐도 커다란 유리벽 너머의 중절모들과 유니온잭 빤스를 입은 놈과는 질이 아주 다른 사람들이겠군요.

하여간 우리의 뱅시,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요? 그냥 술꼬장 일까요?
하여간 그것이 무엇이든 다소곳하고 평화롭던 중절모들이 유니온잭 빤스의 난동과 동급이 되어버린 건 확실한 것같습니다. 

뱅시가 노린 것이 이것일까요? 한통속 작전말이죠.
고상한 놈들과 빤스는 유리가 깨어지는 순간을 공유하는 한 공간에 있으며 유리가 깨어지는 순간의 파열음은 빤스에게도 중절모에게도 동시적, 동시대적 사건입니다. 혹 피부를 스쳐 피가 나더라도 그 피 색깔이 빨갛기는 다 똑같은거겠죠. 하여간 그 유리가 깨지는 것을 경험하는 동시성 안에서 중절모와 빤스는 동급이 되는거죠.

요새는 뭔가 싸움이 일어날 때면 무조건 말리는 놈이 사려깊은 사람이 되고, 싸우는 양쪽 당사자는 누가 옳고 그르건 간에 똑같이 '철없이 싸우는 사람' 취급받잖아요?

좀 옆길로 샌 이야기로,  제가 저급하고 무례한 자와 오랜 싸움을 할 때 이야기인데, 그 때는 <말리는 놈>이 제일 밉더군요. 그들은 무조건 싸우지 말라는 이야기 밖에 할 줄 모르면서 나와 나의 적을 '그저 쌈박질하는' 동급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보다 더 미운 놈들이 있는데, 그건 싸움하는 걸 보면서  <관전 평 하는 놈>들입니다. 누가 이렇고, 저렇고, 옳고, 그르고, 하여간 너무도 냉철하게 분석적인 그들의 컴퓨터 머리통은 정말 과학적이고 객관적이어서 확 깨놓고 싶죠.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제일 나쁜 놈들은 <말리면서 관전 평하는> 놈들입니다.
그리고 이 놈들이 제일 나쁜 놈인 이유는 실제로는 싸움을 말리지도 못할 뿐더러 어찌해서 싸움이 끝나면  '굿이나 보고 있었으면서 떡을 먹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잘 체하지도 않는 체질이기 때문입니다.
옆길로 많이 샜군요.다시 제자리로 돌려야죠.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면

하여간 뱅시로 인해, 단절 되었던 공간들에 갑자기 호들갑스러운 소통이 시작되었군요. 그 소동의 끝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이를테면 10분 뒤 쯤 빽차가 나타나고 빤스를 끌고 가겠죠? . 다시 중절모들은 하던 이야기를 계속할테고, 하얀 유니폼의 종업원은 깨진 유리를 살피는 앵글 앞쪽자리에 재배치될테고,  다시 10분쯤 지나면 짐발 자전거를 탄 유리쟁이가 새 유리를 실고 나타날 수도 있고...  뱅시가 유리를 깨버리자 갑자기 어떤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수다를 떠는 이유는, 바로 뱅시의 이 그림이 에드워드 호퍼라는 화가가 60년 전에 그린, 아래 그림에 대한 댓글 같은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아래 그림과 한 짝이 되었을 때, 뱅시의 그림은 비소로 완성이 되는 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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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hawks  Hopper, Edward

 1942  Oil on canvas  30 x 60 in.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호퍼의 그림은 제가 포스팅헀던 <블레이드 러너>를 만들 때 미래 풍경을 고심하던 리들리 스콧이 참고했던 화가라고 하네요. <졸려>님의 설명에 의하면 http://blog.icculture.net/ella

"리들리 스콧이 블레이드 러너를 만들면서 참고한 그림이 에드워드 호퍼의 Nighthawks 랍니다.
 Nighthawk는 쏙독새, 또는 밤도둑, 구어로는 밤을 새우는 사람이라는 뜻이랍니다.
 그림 제목을 한국어로 하자면 '올빼미들'로 해야겠네요."

"Nighthawks와 같은 그림은 그 안에 담긴 공허나 익명의 존재, 혹은 소통하지 못하는 것들을 통해 고독함과 황량함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이 그림에 대해 호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그림을 볼 때)특별히 고독감이 떠오르진 않아요. 글세요. 아마도 무의식 중에 대도시의 고독감을 그렸는지는 모르죠." http://www.ibiblio.org/wm/paint/auth/hopper/ 
 
호퍼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의 단절감같은 묘한 분위기의 원조인 셈이네요.
바로 그 공허, 익명의 존재들의 소통하지 못함, 고독, 황량함을 뱅시가 티껍게 생각을 했든지, 아니면 안타깝게 생각했든지, 하여간 뭔가를 하기로 결심한 결과물이 바로 저 그림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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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게시판에 호퍼가 글을 쓰자, 뱅시가 댓글을 달듯이, 60년의 간극을 훌쩍 넘어 두 사람이 그림으로 댓글달기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엔, 이것...바로 댓글달기식의 이것이 요즘 미술인 것 같습니다. 어떤 작가가 문제를 내고, 다른 작가가 답하는 방식. 그리고 그 답이 적절한지, 문제의 요지를 잘 따라간 것인지가 작품의 퀄리티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는 것 말이죠. 그냥 한 장의 그림이 아니라 그림이 보여지고 이해되는 '소비 방식' 자체로서의 미술이라고나 할까요?

미술계 전체가 미술이 되어버린 미술. total 미술. 그런 상상을 해봤습니다.

이렇게 막 지껄여도 되는건가요? 보플샘님?
하여간 무식한 게 용감한 거라고,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건데 막 무식하게 지껄여도 아는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모르더라고요.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솔직하게 궁금한 것을 토해놓지 않으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