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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기 연습

운전하면서 책읽기



노마디즘을 마쳤다.

5개월 정도 걸렸다. 차에서 운전할 때만 읽었기 때문이다.
"그런 위험 천만한 짓을?" 하고 묻겠지만 생각보다 아주 안전하다. 게다가 유익하다.

방법은 이렇다. 출근하기 위해 차에 오를 때 책을 펴고 연필을 읽던 페이지에 끼워 놓는다. 차를 몰고 가다가  빨간 신호등에 걸리면 재빠르게 펼쳐서 밑줄을 그으며 몇 줄 읽는다. 보통 3분에서  5분의 시간이다.  다시 녹색불이 들어오면 책에서 손을 떼고 운전대를 잡고 출발한다. 그리고  읽었던 구절을 암송하듯 머리속에서 굴려보는 것이다. 다시 빨간불을 만날 때까지 시간은 충분하다. 암송하듯 천천히 웅얼거린다. 그러다 신호가 걸리면 다시 연필을 끼워놓은 페이지를 펼치고 반복.

간혹 책 읽는데 빠져 출발이 늦을 때는 뒤에서 빵빵거리기도 한다. 그러면 미안하다고 수신호를 하고 출발한다.  이렇게 출근하는  40분 동안 매일 읽었다. 그리고 읽기를 마친 오늘 날짜를 헤아려보니 꼬박 다섯달이나 걸린 것이다.

오래걸리긴 했지만 그만큼 이득도 많았다. 아주 꼼꼼하게는 아니더라도 음미하면서 읽게된다.
글자들은 뒤에서 또 밀려오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머리가죽을 뚫는다.  들어와서는 뇌 속 뉴우런들 사이를  뱅뱅 돌면서 박히기도하고 부딪히기도 하면서  예전 생각들과 만나기도 하고, 새로운 생각을 낳기도 한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에게로 튀어나가 그 사람의 머리 속에서 뭔가를 꺼내들고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그것들은 장수 IC를 통과할 즈음이면 서로 섞여서 거품을 내는데 차가 막히거나 하는 날에는 숙성되는 시간도 더 넉넉해진다.

처음부터 이렇게 읽겠다고 계획한 것은 아니다. 읽다보니 이렇게 읽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는 생각이 어느순간 들었다. 왜냐하면 노마디즘은 읽는 책이라기 보다는 연습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혹은 읽었던 것을 현실 세계에서 써먹어보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하루에 아주 조금씩만 읽어야 한다. 10페이지정도가 적당한 분량인 것같다.

차 속에서 나는 수정되었다. 나의 어떤 부분이 죽고 또 어떤 부분은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것인데, 운전대를 놓고 밖으로 나와서도 그 일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수정된다.  죽거나 다시 살아난다.